평소의 발견(유병욱 지음) ★★★☆☆
카피라이터 유병욱의 '생각의 기쁨'을 이은 2번째 책 '평소의 발견'을 읽어보았습니다.
생각의 기쁨을 읽었을 때 보다는 집중도도 낮고 재미도 그만큼 적었던 것 같아요.
20대인 제가 공감하기에는 어려운 부분도 많이 있었습니다. 저자는 오래 카피라이터 일을 해오신 분이니까요.
세대가 다르다는 걸 느끼면서, 그래도 최대한 그 마음을 느껴보려고 노력하며 읽었습니다.
카피라이터가 생각하는 평소에 대해 읽다보니, 내 평소에도 뭔가를 놓친 것은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고
출근길, 퇴근길, 회사 안밖으로 '평소의 맛'을 느껴보려고 노력하는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다시 이곳에 책을 정리하면서 다시금 내용을 되돌아보고 좋았던 부분은 기록해나가면서
타인의 평소도 나의 평소에도 더 많은 기쁨을 찾아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프롤로그 : 우리를 구원하는 것은 '평소의 시간'이다
특별할 것 없는 보통의 날들을 얼마나 풍부하고, 충만하게 보내느냐가 우리를 치약이 될 운명으로부터 구원해줄 수 있다고 믿습니다.
평소의 관찰, 평소의 독서, 평소의 음악, 평소의 여가. 틈틈이 나를 채울 수 있다면, 생각의 재료들을 쌓아둘 수 있다면, 고통스럽게 내 밑바닥을 보는 일은 줄어듭니다.
그리고 가끔씩은, 그 특별할 것 없는 보통의 시간 속에서 건져 올린 보석들이 특별한 생각으로 태어나는 경험을 합니다.
PART 1 평소의 관찰
"빅파이란 이름에 기대했다가
그 스몰함에 좌절하는 게 인생일까?"
여러분이 TV 화면을 통해 보는 광고는 15초. (...) 짧은 시간 동안 10컷에서 15컷 내외의 장면으로 제품을 매력적으로 보이게 해야 하거든요. 사용되는 컷 수가 적으니 한 컷 한 컷의 완성도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가끔은 돌아가보는 게 어때. 빅파이라는 이름을 듣고도 의심하지 않았던 시절로. 미리 움츠러들지 않고, 예단하지 않고, 좋으면 좋다고 미친 듯이 웃고, 실망하면 그저 온 힘을 다해 울고.
몇 시간씩 공들여 쌓은 모래성이지만, 저녁밥을 먹으러 가는 길 망설임 없이 부수는, 순간순간을 온전히 누리는 아이로. 이것 봐. 빅 사이즈 빅파이. 이건 꽤 커. 우리 인생엔 진짜 '빅파이도 분명히 있어.'
준비가 전부입니다. 프레젠터는 일부입니다. (...) 멋있어 보이려 하지 말고, 상대의 머릿속이라는 림 위에 아이디어라는 공을 넣고 오는 겁니다. 그뿐입니다. 이것이 저를 구원한 레이업슛 이론입니다.
본질적으로 좋은 생각이 담긴 글은 수식어가 없는 편이 나았습니다.
멋진 것이 떠올랐다면, 멋지게 보이려고 노력하지 말자. 가장 큰 감동은 설명하지 않고 그 상황을 담백하게 보여줄 떄 나온다.
넘치는 형용사와 부사는 오히려 문장의 힘을 빼죠.
무엇이든 심장을 내려앉히는 매력이 있을 수 있습니다. 발견하는 눈이 없을 뿐이죠.
미식가란, 맛있는 음식만 먹는 사람이 아니라, 모든 음식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다'라는 문장을 본 적이 있습니다.
세상 어디에도 없는 가우디만의 곡선, 그 시작은 '결핍'이었던 거죠. 나에게 없는 것이, 내게 부족한 것이, 어쩌면 내게 힘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것이 간절함이 되고, 앞으로 나아갈 동력이 될 수 있는 겁니다. 그리고 때론, 결핍이 명백한 존재가 더 사랑스럽다는 생각도 합니다.
"넌 십년감수할 수 없어
넌 아직 열 살이 아니니까."
재료가 반입니다. 아니, 사실 재료가 압도적으로 좋으면 큰 기술이나 기교가 필요 없습니다. 광고를 볼 타깃의 인사이트를 절묘하게 포착할 수 있다면, 대단한 포장이나 카피가 필요 없다고 생각합니다.
'누군가의 사랑이 끝나면, 세 여자의 여행이 시작된다.'_일본 렌터카 회사, 하트-비트 모터스 광고
아이는 하루 종일 천장을 보게 됩니다.
이 집의 전구로는 뭐가 좋을까요?
_오스람 전구
뛰어난 테크닉은 쓰지 않았지만 강렬하게 기억에 남습니다. 그건 앞서 말씀 드린 대로 삶에서 '건져 올린' 카피이기 떄문이라고 생각해요.
매일 요리를 내야 하는 셰프라면, 좋은 재료가 가득 찬 창고만큼 든든한 게 없겠죠. 생각이 직업인 누군가도 똑같을 겁니다. 수십 가지 발상법보다, '건져 올린' 생각의 재료들을 담아둔 창고가 더 위력적입니다.
새롭고 흥미로운 것을 발견했을 때의 빛나는 눈빛. 그리고 그것에 대한-적든, 찍든, 곧바로 SNS에 올리든, 방식을 가리지 않는-가차 없는 포획.
"영국의 방송은
9시 30분 이전과 이후로 나눠져요."_허마이어니, 나의 영국 유학 시절 영어 선생님
9시 30분을 영국 사람들은 '워터쉐드'라고 불러요.
세상에는 애초에 안 되는 것, 못하는 것이 정해져 있는 게 아니구나.
세상의 힘으로 살아가는 이에게 가장 중요한 건 결국 세상을 만나는 일련의 '태도'들이라고
'메일에 적힌 오타는,
딱 그만큼 당신이 중요하다는 뜻.'
PART 2 평소의 메모
"새로운 세계는 항상,
우연의 옷을 입고 찾아온다."
"뭔가를 복잡하게 말하는 사람은,
그것을 모르고 있을 확률이 많다."
생각해보니, 살면서 만난 인생의 문장들은 늘 간결했습니다. 하지만 간결한 것을 '쓰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뛰어난 리더들과 함께 일을 해보면 늘 지시가 명확했습니다.
"누구의 손에도 답은 없다.
그러니 묻는 것이 부끄러울 이유도 없다."
일정한 시간을 두고 쌓은 지식에 매달려 오랫동안 먹고사는 시대는 끝났습니다.
이제는 나에게 옳던 것이 지금도 옳은지를 끊임없이 의심해야 합니다.
그러니 앞으로 가장 위험한 말은 '내가 해봐서 아는데'일 겁니다.
하지만 이제는, 세대를 불문하고. 모르는 것에 대해 잘 묻는 게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습니다. (...)
혼자 힘으로 따라잡을 수 없을 만큼 시대는 빨리 변하니까.
당신의 나이가 몇이든, 질문을 두려워하지 마세요.
시간을 이기는 관계는 없습니다.
'인간관계는 인연이 아니라 의지이다.'
"우리는 무언가의 디테일 하나에 마음을 뺏기고,
그것을 사랑할 100가지 이유를 찾고 있는지도 몰라."
재규어 운전석에 오르면 시동 버튼이 1분에 72회 깜박이기 시작합니다. 이는 움직이지 않을 때 맹수 재규어의 심장박동수와 같습니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디테일에서 전체를 예감합니다.
남들은 신경 안 쓸 조그만 부분에 굳이 신경 쓴 것을 보면 한 번 더 눈길이 갑니다. 짧은 순간 많은 것을 말해야만 하는 시대일수록, 디테일의 힘이 세질 거라는 생각을 합니다.
'God is in the detail(신은 디테일 안에 있다).'
상대를 잘 모를 때는 그가 원하는 대로 만들고 판단할 여지를 좀 열어주는 편이에요.(제 주위 사람들은 이를 두고 '룸을 열어준다'라고 표현합니다.)
미세한 디테일들이 모여 만드는 미세하지 않은 차이. 디테일의 마법입니다. 역시, 퀄리티는 디테일의 합입니다.
내가 잘하는 일을 기어이 찾아내어 그 자리가 빛나는 것. 그것이 오히려 나를 빛나게 하고, 내가 속한 팀을 이기게 합니다. 그런 선수들이 많은 세상이, 적어도 모든 이가 4번 타자가 되려는 세상보다 더 행복하지 않을까요?
"리더의 제1능력은 '동기부여력'이다."
그리하여 2009년 대한민국 최고의 캠페인은 시작되었다.
"지금 이 일을 너희 팀 아니면 안 돼. 너희 팀이 가장 잘 할 수 있어"
"미래는 존중 속에 있다."
자신의 취향이 무엇인지 깨닫고, 섭렵하고, 견고히 하다. 시들해지고, 다시 불이 붙고, 그렇게 시간의 힘을 통해 다듬어야만 비로소 생기는 것이 안목이니까요.
요즘 같은 세상일수록, 괜찮은 생각들을 더하고 섞어서 없던 가능성을 만들어내는 방식이 필요합니다.
기술엔 약해도 안목을 가진 멋진 어른이 되는 삶.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뛰는 여자들의 고통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바위를 부수는 건 거대한 망치일 수도 있지만, 집요하고도 꾸준하게 떨어지는 처마 끝의 물방울일 수도 있습니다.
PART 3 평소의 음악
뭔가에 두드려 맞은 기분이 드는 날.
막 도착한 맥주의 '첫 잔'
무엇이든 그것이 해당하는 분야의 본질에 얼마나 닿아 있느냐가 중요한 게 아닐까요?
'누구나 흘러간 노래가 된다. 하지만 어떤 노래는 흘러간 뒤에도 멋지다.'
스티커를 떼어내도 자국이 남는 것처럼. 그래서 훗날 우리가 '그 노래'에 다시 닿으면, 통로에 여전히 남아 있는 그 시절의 나를 다시 만나게 되는 거죠.
'안녕, 20대의 나. 걱정거리가 많지? 형이 진지하게 말하는데, 걱정할 시간에 맛있는 걸 하나 더 먹으렴. 여행 많이 다니고, 사람도 많이 만나보고. 내가 걱정 좀 해봐서 아는데, 세상에 걱정처럼 쓸모없는 게 없더구나.'
'거지 같은 하루였지만, 마무리는 근사하네.'
진흙 같은 일상에 박힌 찰나의 보석들.
"소재의 문제가 아니라
해석의 문제입니다."
원곡에 대한 완전히 새로운 해석. 그건 마치 같은 재료로 전혀 다른 요리를 만들어내는 셰프를 보는 것만 같았습니다.
미켈란젤로는 그의 조각 작품 '죽어가는 노예상'(정식 명칭은 '교황 율리오 2세 무덤의 죽어가는 노예')을 만든 후 이렇게 말했다죠. "나는 대리석 속에 원래 존재해 있던 형상을 해방시킨 것뿐이다." 어쩌면 중요한 건. 재료보다 해석일지 모릅니다.
'재료만큼 중요한 건 해석과 관점.
어느 회의실이든 놀라운 재료는 숨어 있다.'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이 쉴 곳 없네
큰 회사에서 사람들에게 회자되는 캠페인을 만드는 카피라이터가 된 제 모습을 상상했었는데, 현실 속의 제게는 '카피라이터'라는 명함 속 다섯 글자 외에는 모든 것이 달랐습니다.
광고 일을 시작하자마자 멋진 캠페인을 경험하고 있다는 동년배들의 소문을 들을 때마다 작아지던 마음과, 막상 일을 시작했지만 마음먹은 대로 써지지 않던 카피와, 이대로 굳어지면 어쩌나 하는 불안,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이 일을 잘할 수만 있게 된다면 나를 깎고 자르고 부서지고 깨어져도 좋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PART 4 평소의 밑줄
"용기란 두렵지 않은 것이 아니라,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하는 것이다."
오늘 아침 달린 5킬로미터의 트랙 중 가장 먼 구간은, 침대에서 현관문까지의 거리이다. _나이키
그러니 중요한 건 '시작'입니다. 시작하는 용기입니다. 때론 무책임하게 던져놓기. 미리 결과를 두려워하지 않기. 할까 말까 고민이 되는 프로젝트는 일단 해보기. 솔직히 두렵고 걱정되지만,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하는 것. 이것이 제게 꼭 필요했던, '용감하지 않은 자를 위한 용기'랄까요?
10년 뒤 당신은, 당신이 한 것보다
하지 않은 것에 대해 후회하게 될 것이다.
_마크 트웨인
브랜드를 공부하고, 만든 사람을 인터뷰하고, 시장 상황을 분석해서 지금 그 브랜드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30초에서 1분 정도의 긴 문장으로 풀어 쓰는 것. 흔히 매니페스토라 부르는 카피
0.5퍼센트 안에 드는 작품을 목표로 해라.
그래야 5퍼센트 안에 드는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다.
"모든 것을 할 자유.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
_클럽 메드 광고 카피
낮을 만드는 건 충분한 밤이죠. 쉼표가 없으면 문장이 엉망이 됩니다. 우물에게도 차오를 시간은 필요합니다.
일만 알고 휴식을 모르는 사람은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와 같다_헨리 포드
멈추는 것은 손해가 아닙니다. 자동차 경주의 꽃이라는 F1레이싱에서는 레이스 중간에 달궈진 엔진을 식히고, 타이어를 교환하는 과정이 필수입니다. 그래야 50바퀴 이상의 장거리를 버틸 수 있다고 해요.
"사람이 주는 스트레스는 2년.
2년이 지나면 그가 떠나거나, 내가 떠나게 된다."
'천재성'과 '낭만'의 영역이라고 느껴지던 글쓰기가, 실은 전혀 낭만적이지 않은 매일의 꾸준함에 빚지고 있다고 그들은 공통적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브랜드에 대해 잘 모르면 딱 그만큼의 카피가 나오니까요.
아무리 대단한 재능을 가진 후배도, 좋은 카피를 실제로 써 내려가기 위해서는 2년 정도의 절대적인 시간이 필요합니다.
인생엔 오직 시간을 투입하고 기다려야만 얻을 수 있는 것들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영역을 불문하고, 지식을 습득하고 자신의 것으로 변환하는 데에는 절대적인 시간, 숙성의 시간이 필요한 거죠.
'성실이 쌓이면, 혁신이 된다.'_패션디자이너 노라 노
몰두하는 이의 뒷모습은 멋집니다. 몰두의 시간은 분명 선물을 안겨줄 거예요. 그 몰두의 시작이, 남의 강요가 아닌 나로부터 시작된 질문과 그에 대한 답의 결과라면, 당신이 보낸 몰입의 시간은 급하게 집어넣은 지식으로는 결코 닿을 수 없는 곳에 당신을 닿게 할 겁니다.
살 수 있는 범위 내에서 가장 좋은 물건, 지갑이 허락하는 가장 비싼 것을 산다.
결국 우리는 우리가 만든 결과물로 우리를 말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인걸요.
음악이 샤워기에서 나온 물줄기처럼 머리 위로 쏟아지는 기분
'평소'를 흘려보내지 않으면, '평소'를 만끽하다 보면, '평소'는 슬그머니 우리에게 반짝거리는 기쁨들을 선물합니다.
인생의 보석들은,
평소의 시간들 틈에 박혀 있습니다.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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